- 제4문 본문으로
원문 "What is God?"은 하나님의 본성을 묻는 물음이라 "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?"로 옮겼다.
원문은 하나님이 존재·지혜·능력·거룩함·공의·선하심·진실하심에서 무한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으신다고 말한다. 한국어에서는 이 일곱 속성을 주어로 삼아 같은 뜻을 풀어 썼다.
- 제7문 본문으로
counsel of his Will은 개역개정 에베소서 1장 11절의 표현을 따라 "자기 뜻의 결정"으로 옮겼다. counsel은 하나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계획과 결정을 가리킨다.
- 제12문 본문으로
estate는 재산이 아니라 "상태, 처지"라는 뜻이다. 이 문답 전체에서 "상태"로 옮겼다.
생명 언약(Covenant of life)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 2절이 "행위 언약"(covenant of works)이라고 부르는 언약과 같다.
- 제14문 본문으로
want는 17세기에 "원함"보다 "없음, 부족함"의 뜻으로 흔히 쓰였다. want of conformity는 율법에 일치하지 못하는 결핍을 말한다. 제18문의 want of Original righteousness도 같은 뜻이다.
- 제16문 본문으로
ordinary generation은 남녀의 결합으로 생겨나는 보통의 생식을 말한다. 초점은 출생보다 잉태되어 생겨남에 있어 "통상적인 생식"으로 옮겼다. 그리스도도 태어나셨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셨으므로 여기에 들지 않는다는 뜻으로 흔히 읽는다(제22문 참조).
- 제18문 본문으로
which is commonly called Original sin이 바로 앞의 "본성 전체의 부패"만 가리키는지, 앞의 세 요소(아담의 첫 죄의 죄책, 본래의 의가 없음, 본성의 부패)를 함께 가리키는지 영어에서도 읽기가 갈린다. 번역은 "곧 흔히 원죄라고 부르는 것"으로 두어 두 읽기를 모두 열어 두었고, 뒤의 it도 "거기서"로 옮겼다.
- 제19문 본문으로
여백의 증거 구절 i가 "Rom.6.29."로 인쇄되어 있으나 로마서 6장은 23절까지다. 6장 23절의 오식으로 보고 롬 6:23으로 읽었다.
- 제20문 본문으로
meer(mere)는 17세기에 "단지"보다 "순전한,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"의 뜻으로 쓰였다. 택하심이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서 나왔다는 말이라 "순전히"로 옮겼다.
- 제21문 본문으로
Person은 제6문의 삼위와 같은 말이므로 "위격"으로 옮겼다. 그리스도론에서는 흔히 "한 인격"이라고도 한다.
- 제22문 본문으로
reasonable soul의 reasonable은 오늘의 "합리적인"이 아니라 "이성을 지닌"이라는 뜻이다.
인쇄본은 without을 "withont"로 찍었다(u 활자가 뒤집혀 n으로 찍힘). 원문은 인쇄된 대로 두었고, 번역은 without으로 읽었다.
- 제25문 본문으로
once offering up of himself의 once는 "한때"가 아니라 "단 한 번"이라는 뜻이다(히 9:28, 10:10). "단번에"로 옮겼다.
- 제31문 본문으로
convincing us of our sin의 convince는 오늘의 "설득하다"가 아니라 "죄를 깨우쳐 인정하게 하다"라는 뜻이다. 뒤의 perswade(설득하다)와 구별된다.
- 제43문 본문으로
인쇄본에는 인용을 여는 대괄호만 있고 닫는 대괄호가 없다. 번역에서는 인용의 끝을 보이려고 닫았다.
- 제49문 본문으로
unto thousands는 "수천 명"으로도, "수천 대"로도 읽힌다. 앞의 "삼 대와 사 대"와 짝을 이루므로 흔히 "천 대"로 읽는다(신 7:9). 번역은 "수천에 이르기까지"로 두었다.
- 제52문 본문으로
propriety는 오늘의 "예의, 적절함"이 아니라 "소유, 소유권"(property)이라는 뜻이다. 하나님이 우리를 소유하신다는 말이다. 제62문의 propriety도 같다.
- 제53문 본문으로
인쇄본은 이 인용에서 다른 계명 인용의 LORD와 달리 Lord로 찍었다. 출애굽기 20장 7절의 하나님 이름이므로 다른 계명 인용과 같이 "여호와"로 옮겼다.
- 제56문 본문으로
suffer는 오늘의 "고통을 겪다"가 아니라 "허락하다, 내버려 두다"라는 뜻이다.
- 제57문 본문으로
인쇄본에는 인용을 여는 대괄호만 있고 닫는 대괄호가 없다. 번역에서는 인용의 끝을 보이려고 닫았다.
- 제59문 본문으로
그리스도인의 안식일(Christian Sabbath)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지키는 한 주의 첫째 날, 곧 주일을 말한다.
- 제60문 본문으로
인쇄본은 이 문의 끝을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로 찍었다. 번역은 물음으로 옮겼다.
- 제62문 본문으로
challenging은 "도전하다"가 아니라 "(권리를) 요구하다, 주장하다"라는 뜻이다.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특별히 자기 것으로 주장하신다는 말이다.
- 제64문 본문으로
several은 "몇몇의"가 아니라 "각자의, 저마다의"라는 뜻이다. 제65문도 같다.
- 제74문 본문으로
outward estate의 estate는 앞선 문답들("상태")과 달리 재산과 살림의 형편을 가리키므로 "외적 형편"으로 옮겼다. 제75, 81문도 같다.
- 제80문 본문으로
charitable은 오늘의 "자선의"보다 넓게, charity(사랑)에서 나온 "사랑에 찬"이라는 뜻이다.
- 제81문 본문으로
motions는 "움직임" 가운데 마음의 움직임, 곧 충동을 말하고, affections는 감정이나 욕망을 말한다. inordinate는 "질서를 벗어난, 지나친"이라는 뜻이다.
- 제82문 본문으로
meer man(mere man)은 "그저 사람일 뿐인 자"라는 뜻이다.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이 말에서 제외하려는 표현이다.
- 제85문 본문으로
communicate는 오늘의 "소통하다"가 아니라 "나누어 주다, 전해 주다"라는 뜻이다. 제88문도 같다.
- 제87문 본문으로
증거 구절 l의 첫 참조는 인쇄본에 "1 Cor.7.11."로 찍혀 있다. 고린도전서 7장 11절도 실재하는 절이지만, 회개의 열매를 말하는 고린도후서 7장 11절의 오식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.
apprehension은 "깨달음, 파악"으로 옮겼으나 "붙잡음"(laying hold)으로도 읽을 수 있다. 번역은 앞의 sense(자각)와 짝을 이루는 인식의 뜻을 택했다.
- 제91문 본문으로
vertue(virtue)는 "덕"이 아니라 "능력, 효력"이라는 뜻이다.
- 제92문 본문으로
sensible은 "분별 있는"이 아니라 "감각으로 알 수 있는"이라는 뜻이다.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표(물, 떡, 포도주)를 말한다.
- 제94문 본문으로
engagement는 "약혼"이나 "참여"가 아니라 "약정, 서약"이라는 뜻이다. 주님의 것이 되어야 할 의무를 지는 약정을 말한다.
- 제96문 본문으로
shewed forth는 "보여지다"보다 "선포되다, 전해지다"에 가깝다(고전 11:26).
corporal and carnal maner는 몸으로 먹는 육적인 방식을 말한다. 개혁파 해석자들은 흔히 이 표현이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과, 그리스도의 몸을 입으로 받는다는 루터파의 이해(개혁파는 흔히 "공재설"이라 부르나 루터파는 이 명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)를 겨냥한 것으로 읽는다.
- 제104문 본문으로
competent는 "유능한"이 아니라 "알맞은, 넉넉한"이라는 뜻이다.
- 제105문 본문으로
the rather는 "오히려"가 아니라 "더욱"이라는 뜻이다.
- 제106문 본문으로
증거 구절 q는 인쇄본에 "2 Cor.12.1,8"로 찍혀 있다. 고린도후서 12장 1절도 실재하는 절이지만, 시험과 육체의 가시를 말하는 7절의 7이 1로 찍힌 오식으로 보아 보통 고후 12:7-8로 읽는다.